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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먼저 열린 인도 자동차 시장…미국은 대기, 유럽은 웃을까

  • 임지민 기자
  • 입력 2026.01.30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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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와 유럽연합이 1월 말 자유무역협정을 공식화하며 인도 자동차 시장의 빗장을 단계적으로 풀었다. 이번 합의의 핵심은 인도가 유럽산 승용차에 부과하던 수입 관세를 기존 70~110% 수준에서 최종적으로 10%까지 낮추는 내용이다. 

 

적용 대상은 연간 25만 대 물량 한도 내에서 차량 가격이 1만5천 유로를 넘는 수입차다. 세계 3위 규모로 성장한 인도 자동차 시장에서 고율 관세로 막혀 있던 유럽 완성차 업체들이 제한적이지만 공식적인 진입 통로를 확보한 셈이다. 

 

이번 합의는 20년 넘게 이어진 협상의 결과물로 인도 정부와 유럽연합 정상들이 뉴델리에서 이를 최종 확인했다.


인도는 오랫동안 수입차에 높은 관세를 부과해 왔다. 이는 해외 완성차 업체들이 단순 수출 대신 현지 공장을 세우고 부품 조달과 고용을 인도 내에서 해결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이 과정에서 일본과 한국 업체들은 현지 생산을 통해 대중 시장을 장악했고 인도 토종 업체들도 내수 중심으로 성장했다. 반면 유럽 업체들은 고급 수입차 중심 전략을 유지하며 제한적인 판매에 머물렀다. 미국은 이 구조를 지속적으로 문제 삼아 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인도의 자동차 관세를 불공정하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미국 업체에 대한 관세 인하를 요구해 왔다. 그러나 이번 협상에서 먼저 성과를 낸 쪽은 미국이 아니라 유럽이었다.


유럽 자동차 업체들은 이번 합의로 명목상 관세 장벽이 크게 낮아졌지만 실제 시장 환경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인도에서 판매되는 차량의 약 95%는 200만 루피 이하 가격대에 집중돼 있다. 이는 한화 기준 약 3천만 원 초반 수준이다. 

 

수입 관세가 10%로 내려가더라도 각종 지방세와 등록세 보험료가 더해지면 유럽산 수입차의 최종 소비자 가격은 이 대중 시장 범위를 크게 웃돌게 된다. 전문가들은 관세 인하 이후에도 유럽산 수입차가 인도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인도 승용차 시장의 중심은 마루티 스즈키와 현대자동차다. 두 회사는 20년 이상 인도에서 생산 거점을 운영하며 소형차부터 중형 SUV까지 대량 판매 체제를 구축했다. 

 

여기에 타타자동차와 마힌드라 같은 인도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과 현지 소비자 취향을 반영한 모델로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이들 주력 모델 대부분은 250만 루피 이하에 포진해 있다. 유럽 업체들이 노리는 구간은 이보다 높은 프리미엄 영역이다.


메르세데스 벤츠 BMW 재규어랜드로버 아우디 볼보 등 주요 유럽 브랜드는 2025회계연도 기준 인도에서 약 4만9천 대를 판매했다. 같은 기간 인도 전체 승용차 판매량은 430만 대를 넘었다. 수치만 놓고 보면 유럽 브랜드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다만 프리미엄 세그먼트에서는 유럽 브랜드가 여전히 강세를 보인다. 이 시장 역시 성장 속도가 둔화되고 있다. 현지 분석가들은 인도 및 한국 업체들이 생산 능력 확대와 신차 출시 네트워크 확장을 통해 빠르게 상위 트림 영역으로 올라오고 있는 반면 유럽 업체들은 투자에 상대적으로 신중했다고 평가한다.


이번 자유무역협정은 이러한 전략을 재검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고 있다. 관세 부담이 완화되면 유럽 업체들은 틈새 고급 모델이나 소량 판매 모델을 보다 적극적으로 들여올 수 있다. 수요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확대될 경우 현지 조립이나 생산 비중을 늘리는 선택지도 검토 대상이 된다. 

 

실제로 BMW그룹 인도법인은 판매 차량의 95% 이상을 현지에서 생산하고 있음에도 2025년 판매량은 1만8천 대 수준에 머물렀다. 이는 현지 생산만으로 판매 확대가 자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인도 자동차 산업 내부에서는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다. 고율 관세로 보호받아 왔던 프리미엄 SUV 시장이 가장 민감한 영역으로 꼽힌다. 

 

230만 루피 이상 가격대는 인도 업체들의 수익성이 높은 구간이다. 관세 인하로 유럽 브랜드 차량이 이 가격대에 근접하게 되면 배지 가치와 사양 경쟁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있다. 마힌드라 스콜피오나 타타 사파리의 고급 트림은 이미 250만 루피에 근접한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이러한 우려는 주가에도 반영됐다. 협정 발표 직후 마힌드라 앤 마힌드라 현대자동차 인도법인 마루티 스즈키 타타 모터스 주가는 1.5~4% 하락했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인도 업체와 유럽 업체 간 가격 격차가 줄어들며 경쟁 강도가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 경쟁은 전체 시장이 아니라 일부 고마진 세그먼트에 국한될 가능성이 크다.


인도 산업계와 정부는 이번 협정을 장기적으로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인도 업체들은 유럽 시장에 대한 접근성이 개선되고 유럽 업체들의 추가 투자가 유입될 여지가 생긴다는 점을 강조한다. 관세 인하가 곧바로 대량 수입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도 안도 요인이다. 연간 물량 한도와 잔존 관세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늘어날 가능성이 거론된다. 최신 유럽 모델이 이전보다 빠르게 인도 시장에 출시될 수 있고 일부 고급 모델의 가격 부담도 완화될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이는 인도 내에서도 소비력이 상위권에 속하는 제한된 계층의 이야기일 뿐이다. 인도 자동차 시장의 중심축이 단기간에 흔들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 유럽연합이 먼저 문을 열었지만 그 문이 얼마나 넓게 열릴지는 앞으로의 수요에 달려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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