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이 또 한 단계 내려왔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미국의 장기 국가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1으로 하향 조정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미국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와 피치에 이어 무디스에서도 최고 등급 지위를 상실하게 됐다. 미국이 세 곳의 주요 신용평가사 모두로부터 AAA 등급을 잃은 것은 현대 신용평가 체계가 자리 잡은 이후 처음이다
미국 신용등급은 해당 국가가 발행하는 국채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상환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로 국가의 재정 상태와 정책 신뢰도를 종합적으로 반영한다. 무디스는 이번 조정의 핵심 이유로 미국의 재정 건전성 악화를 들었다. 연방정부의 재정적자가 장기간 지속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누적 부채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판단이다.
여기에 금리 상승 국면에서 국채 이자 비용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주요 근거로 제시됐다. 무디스는 현재와 같은 추세가 이어질 경우 미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연방정부 부채 비율이 2030년대 중반 130%를 넘어설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선진국 평균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무디스는 미국이 여전히 세계 최대 경제 규모를 보유하고 있고 달러가 국제 금융 시스템의 핵심 통화라는 점은 인정했지만 재정 운용의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는 더 이상 최고 등급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정치적 요인도 등급 강등 배경으로 언급됐다. 무디스는 지난 10여 년간 반복된 부채한도 협상 파행과 정치권의 극단적 대치가 미국의 정책 결정 신뢰도를 훼손해 왔다고 지적했다.
부채한도란 의회가 연방정부의 차입 한도를 정해두는 제도로 기한 내 합의에 실패할 경우 정부 채무불이행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미국 의회는 이 문제를 두고 매번 막판까지 대립을 이어왔고 그 과정에서 정부 셧다운 우려가 반복적으로 제기됐다. 무디스는 이러한 정치적 불확실성이 재정 문제를 장기적으로 해결하는 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앞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는 2011년 미국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낮췄고 피치는 2023년 같은 조정을 단행했다. 당시에도 재정 적자 확대와 정치적 갈등이 주요 사유로 제시됐다. 특히 2011년에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 회복이 더딘 상황에서 부채한도 협상이 장기화되며 시장 불안이 커졌다.
신용등급 강등 직후 미국 증시는 급락했지만 미 국채에는 오히려 자금이 유입되며 금리가 하락하는 상반된 반응이 나타났다. 이는 미국 국채가 여전히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대체하기 어려운 안전자산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해석됐다.
2023년 피치의 강등 당시에는 시장 충격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 기준금리가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고 국채 발행 확대 우려가 겹치며 금리가 일시적으로 상승했지만 금융시스템 전반의 불안으로 확산되지는 않았다.
무디스의 이번 결정 역시 과거 두 차례 강등과 유사한 맥락에서 이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미 다른 평가사들이 경고한 재정과 정치 리스크를 뒤늦게 공식화한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이다.
무디스는 등급 전망을 안정적으로 제시하며 단기적인 채무 상환 능력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다만 재정 적자 축소와 부채 증가 속도 완화를 위한 정책적 전환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추가적인 신용도 압박이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신용등급 하향은 항상 글로벌 금융시장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미국 국채는 각국 중앙은행과 금융기관의 핵심 자산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금리의 기준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최고 등급 상실이 즉각적인 자금 이탈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 정부의 차입 비용과 금융시장의 위험 인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특히 금리가 높은 환경에서 이자 비용 부담이 더욱 커질 경우 재정 운용의 유연성이 제약될 수 있다.
무디스는 이번 조정이 미국 경제의 급격한 위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세계 최대 경제국이라 하더라도 재정 규율과 정책 신뢰가 약화될 경우 신용도는 예외 없이 조정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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