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긴장감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최근 관세 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그 여파가 반도체로 옮겨가는 흐름이 뚜렷해졌고 이 과정에서 주요 기업들의 주가 흐름도 크게 엇갈리고 있다.
지난 1년간 엔비디아는 여전히 두 자릿수 수익률을 유지한 반면 AMD는 고점 대비 주가가 절반 가까이 하락하며 시장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과거 CPU 시장에서는 인텔과 GPU 시장에서는 엔비디아와 경쟁하며 존재감을 보였던 AMD가 AI 시대에는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를 두고 의문이 커지고 있다
AMD는 오랫동안 CPU는 라이젠 브랜드로, GPU는 라데온 브랜드로 시장에 공급해 왔다. 한때 가성비(가격 대 성능비)를 앞세운 라데온 그래픽카드는 엔비디아의 게임용 GPU와 자주 비교되며 소비자 선택지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AI가 반도체 수요의 중심으로 이동한 이후 시장의 무게추는 급격히 엔비디아 쪽으로 기울었다. AI 학습과 추론에 특화된 GPU를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었던 엔비디아와 달리 AMD는 하드웨어 성능뿐 아니라 이를 실제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소프트웨어 생태계에서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런 상황에서 AMD는 시장을 단숨에 뒤집어 엔비디아를 대체하겠다는 전략이 아니라 독점에 가까운 구조에 균열을 내고 점유율을 서서히 잠식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AMD가 최근 공개한 AI 전용 칩 MI350X는 이 전략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제품이다. 이 칩은 고정밀 연산 모드를 강화해 대규모 AI 모델을 안정적으로 학습하고 실행하는 데 중점을 둔다. AI 모델은 수많은 수치 계산을 반복하며 결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연산 정확도가 낮아질수록 결과의 신뢰도도 함께 흔들린다.
AMD는 이 부분을 파고들어 정확성과 안정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하드웨어 못지않게 중요한 변화는 소프트웨어다. 엔비디아는 CUDA라는 자체 개발 플랫폼을 통해 개발자들이 GPU를 손쉽게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 왔다. 반면 AMD의 ROCm은 기능과 편의성 면에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AMD는 이를 인정하고 MI350X 출시와 함께 ROCm을 대폭 개선하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한 패키지 경쟁력을 강조하고 있다. 회사 측은 이 조합이 성능 대비 비용 측면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점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AMD의 또 다른 축은 시장 접근 방식의 변화다. 과거에는 기업이나 연구기관이 GPU를 직접 구매해 사용하는 구조가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에는 클라우드에서 필요한 만큼 빌려 쓰는 방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는 대규모 초기 투자 부담을 줄이고 필요에 따라 자원을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AI 활용의 진입 장벽을 낮춘다.
AMD는 이 흐름을 기회로 삼아 클라우드 서비스에 자사 칩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점유율을 늘리고 있다. 실제로 AMD는 최근까지만 해도 자사 GPU 기반 클라우드 서비스를 운영하는 기업들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며 생태계 확장에 나서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공급 부족도 AMD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엔비디아 GPU는 수요 급증으로 인해 확보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AI 서비스를 시험하려는 기업과 개발자들은 대안으로 AMD GPU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늘고 있다. 처음에는 임시 선택이었더라도 사용 경험이 쌓이면 이후에도 같은 환경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AMD는 이 지점을 노려 자사 GPU를 실제 현장에서 사용해보게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AMD의 확장은 데이터센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바이오와 제약 분야에서는 AI를 활용한 신약 개발이 활발해지고 있는데 이 영역에서는 초고속 처리보다 정확한 추론이 중요하다.
AMD는 관련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이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또한 공장 자동화나 영상 분석 같은 엣지 환경에서는 대형 서버용 GPU보다 전력 효율이 높은 소형 칩이 유리하다. AMD는 과거 인수한 기술을 활용해 이러한 분야에서도 입지를 넓히고 있다.
최근 AMD가 서버 제조사를 인수한 결정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AI 연산에 필요한 시스템 전체를 맞춤형으로 제공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GPU와 CPU뿐 아니라 네트워크와 운영 환경까지 아우르는 통합 솔루션을 제시함으로써 고객의 선택 부담을 줄이려는 시도다. 이는 칩 성능 경쟁에서 벗어나 실제 도입과 운영 단계에서의 편의성을 무기로 삼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결국 AMD의 행보는 AI 반도체 시장에서의 역할을 대폭 재정의하려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엔비디아와의 정면 대결이 아닌 틈새 공략과 생태계 확장을 통해 점유율을 확보하려는 이 전략이 어느 정도 성과를 낼지 주목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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