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앙은행인 BOJ가 기준금리를 0.75%로 인상했다. 종전 0.50%에서 0.25%포인트를 올린 것으로 이번 결정은 만장일치였다. 일본 기준금리가 0.75%까지 올라간 것은 1995년 이후 처음이다. 올해 1월에 이어 두 번째 인상이다. 숫자만 보면 크지 않은 변화지만 일본 경제의 역사로 놓고 보면 방향이 바뀌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일본은 지난 30년 가까이 ‘금리를 올릴 수 없는 나라’였다. 1990년대 초반 부동산과 주식 거품이 무너진 뒤 경기는 장기 침체에 빠졌고 물가는 거의 오르지 않았다. 물가가 오르지 않으면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릴 이유가 없다.
그래서 일본은행은 금리를 0% 근처에 묶어 두었고 한때는 마이너스 금리라는 극단적인 정책까지 꺼내 들었다. 은행에 돈을 맡기면 이자를 받는 대신 오히려 수수료를 내는 구조였다. 그만큼 일본은 디플레이션, 즉 물가가 계속 떨어지는 상황을 두려워해 왔다.
이 흐름이 바뀌기 시작한 계기는 엔화 약세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수입 물가가 올랐고 에너지와 식료품 가격이 빠르게 상승했다. 여기에 기업 실적 개선이 겹쳤다. 일본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익이 늘어나면서 임금을 올릴 여력이 생겼고 실제로 임금 인상이 수년 연속 이어졌다.
일본은행이 이번 회의에서 강조한 대목도 여기에 있다. 기업 이익이 견조하고 임금 상승이 2026년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이다. 임금이 오르면 소비가 늘고 소비가 늘면 물가가 움직인다. 일본은행이 오랫동안 기다려 온 그림이다.
다만 이번 금리 인상을 두고 “일본이 본격적인 긴축에 들어갔다”고 해석하는 것은 과하다. 핵심은 실질금리다. 실질금리는 기준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값이다. 현재 일본의 물가상승률은 2%대 후반에서 3% 수준이다. 기준금리가 0.75%라면 실질금리는 여전히 마이너스다.
쉽게 말해 금리를 올렸지만 돈의 가치가 줄어드는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에 통화 정책은 여전히 느슨한 상태라는 뜻이다. 일본은행도 정책은 아직 충분히 완화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이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럼에도 시장이 이번 결정을 예의주시하는 이유는 방향성 때문이다. 일본은행은 “10월에 제시한 경제 전망이 현실이 된다면 금리를 계속 올릴 것”이라고 밝혔다. 조건부이지만 추가 인상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이는 일본이 초저금리 체제를 서서히 벗어날 준비를 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속도는 매우 느리겠지만 이전처럼 무한정 금리를 묶어 두지는 않겠다는 신호다.
물가 전망도 흥미롭다. 일본은행은 2026년 회계연도 상반기에는 근원 물가가 2% 아래로 내려갈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이후에는 다시 완만하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물가가 당장 통제 불능 상태로 치솟고 있다는 판단은 아니라는 뜻이다. 동시에 디플레이션으로 되돌아갈 가능성도 낮다고 보고 있다.
일본은행이 급하게 금리를 올릴 이유도 없고 다시 내릴 이유도 없는 중간 지점에 서 있다는 것이다.
금리 결정 이후 일본 주식시장은 상승했는데, 대표 지수인 Nikkei 225는 1.5% 오르며 4만9천 선을 넘어섰다. 금리 인상이 경기 회복의 증거로 해석된 데다가 동시에 정책이 급격히 조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이 작용했다. 반면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156엔 수준까지 밀리며 엔화는 약세를 보였다.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이가 여전히 크고 일본은행이 매우 천천히 움직일 것이라는 인식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시장의 관심은 우에다 가즈오 총재의 기자회견으로 쏠렸다. 총재가 어느 정도까지 금리 정상화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가 향후 엔화와 일본 자산 가격을 좌우할 변수이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은 브레이크를 밟기 시작했지만 아주 살짝 발을 얹은 수준에 가깝다. 급정거는 염두에 두지 않는 모습이다.
이번 결정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일본이 더 이상 과거의 일본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가가 오르고 임금이 움직이며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는 나라로 돌아오고 있다. 다만 그 속도는 세계 주요국 가운데 가장 느릴 가능성이 크다.
당분간 일본 시장에서는 느린 금리 인상, 상대적으로 약한 엔화, 그리고 이를 버팀목으로 한 주식시장 강세라는 묘한 조합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번 0.75%라는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본은행이 방향을 틀었다는 사실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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