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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칼럼] 서울은 소프트웨어, 지방은 피지컬…AI가 달라지고 있다

  • 고건 기자
  • 입력 2025.11.08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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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여러 지역에서 열린 로봇·AI 전시회를 취재하면서 한 가지 인상 깊었던 점이 있었다. 같은 산업이라도 지역마다 중점적으로 다루는 기술과 사업 아이템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서울·경기권은 연구개발 중심의 생태계를 기반으로 소프트웨어 중심의 AI 기술이 주를 이루었고 지방은 제조업 인프라를 중심으로 피지컬 AI(Physical AI) 기술이 활발하게 발전하고 있었다. 

 

이런 차이가 어디서 올까. 필자는 그 이유를 기업의 규모나 자본력의 문제보다는 산업의 뿌리와 지역의 DNA에서 찾고 싶다. 먼저 서울·경기권을 보면 분당과 판교 등 R&D 특구를 중심으로 대기업 연구소와 스타트업이 밀집해 있다. 

 

이 지역에서는 생성형 AI, 대형언어모델(LLM), 디지털 트윈 등 데이터를 중심으로 한 SW 기술이 주 사업 아이템이었다. 현실 세계를 가상공간에 정밀하게 재현하고 시뮬레이션하는 디지털 트윈이나 언어와 이미지를 생성하는 AI 모델이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었다. 

 

반면 대구·경북, 창원 등 지방 산업단지에서는 전혀 다른 그림이 펼쳐졌다. 이곳은 오랜 기간 제조업 중심으로 산업 생태계가 구축되어 있었고 기업들은 공장 자동화나 로봇 제어 등 ‘손에 잡히는 기술’을 중심으로 AI를 접목하고 있었다. 

 

특히 대구·경북권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를 중심으로 전자·모빌리티 산업이 발전하면서 물리적 설비에 AI를 접목하는 사례가 많았다. 반면 창원은 현대로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DN솔루션즈(구 두산공작기계) 등 항공·방산·공작기계 기업이 중심이어서 절삭칩 처리나 절삭유 관리 같은 정밀 제조 과정에 AI를 활용하는 기술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었다. 

 

이처럼 지역의 산업 구조가 다르니 같은 AI 기술이라도 적용 방식과 발전 방향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었다. 전시회 현장을 돌다 보면 또 하나의 흐름이 눈에 띈다. 바로 ‘예지보전 AI’의 확산이다. 예지보전은 설비가 언제 고장 날지, 소모품을 언제 교체해야 할지를 미리 예측해주는 기술이다. 

 

진동이나 초음파 같은 센서 데이터를 AI가 분석해 설비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진단하고, 고장 징후를 조기에 파악해주는 방식이다. 설비를 더 오래 쓰고 싶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불필요한 정비를 줄여 원가를 절감하고 갑작스러운 고장으로 인한 안전사고도 예방하는 것에 더 초점을 둔 것 같다.

 

기업 입장에서는 생산 일정과 인력 배치를 미리 계획할 수 있어 경영 안정성도 높아진다. 특히 최근에 참석한 전시회들에서는 여러 센서 데이터를 동시에 활용하는 ‘멀티모달 시스템’이 주를 이루었다. 

 

이는 다양한 데이터를 종합해 더 정밀한 예측값을 도출하는 방식으로 이미 제조업 현장에서 상용화 단계에 진입한 기업도 있었다. 예지보전 기술의 확산은 결국 AI가 ‘사람을 대신해 현장을 읽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편 로봇 산업의 발전 속도에 맞춰 ‘안전과 규제’를 다루는 기술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었다. 산업 현장에서 로봇이 사람과 함께 일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안전사고 방지를 위한 기술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로봇 주변에 안전펜스를 설치하는 정도의 물리적 보호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AI 비전 기술을 이용해 사람이 위험 구역에 접근하면 경고를 보내는 시스템까지 등장했다. 

 

더 나아가 작업자의 움직임과 설비의 동작 상태를 실시간으로 연동해 화재나 기계 오작동 위험을 감지하고 즉시 알람을 울리는 시스템도 개발되고 있었다. 이는 규제 대응과 기업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전략과도 맞물린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보인다. 

 

실제로 전시회에 참가한 여러 기업들은 “이제는 규제를 사업의 기회로 활용할 때”라고 입을 모았다. 규제가 안정화되면서 그 기준에 맞춘 ‘안전 솔루션’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산업 현장의 변화를 지켜보며 AI 기술의 진짜 힘은 ‘융합’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꼈다. AI는 센서·카메라·기계·데이터 등 기존 산업 자산과 결합될 때 비로소 가치를 만든다. 서울·경기권이 디지털 혁신의 중심이라면 지방은 물리적 혁신의 실험장에 가깝다. 

 

AI가 데이터 중심의 뇌라면 피지컬 AI는 그 뇌가 몸을 얻어 움직이기 시작한 단계다. 기술의 주제가 달라지고, 산업의 주체가 변하고 있었다. 네이처아이 역시 이런 흐름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기업(네이처아이)에서는 비전 AI 기술을 활용해 네이처이앤티의 수처리 공정을 자동화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며 앞으로는 센서 데이터를 융합한 예측 모델을 개발할 계획이다. 공정 효율을 높이는 것은 물론 AI 기술을 정부 지원사업과 연계해 사업화 모델로 확장하는 것이 목표다. 

 

장기적으로는 폐수, 소각, 매립, 재활용 등 아직 디지털화가 더딘 환경처리 산업 전반에 자체 솔루션을 적용할 계획이다. 기술이 안정화된다면 전국의 위탁처리업체에 납품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로 발전할 가능성도 충분해 보인다.

 

현재 한국 산업계의 핵심 수요를 함께 고려할 때 향후 피지컬 AI가 실질적인 진전을 이룰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는 다음과 같다.

 

○ 산업 현장의 안전을 강화하기 위한 AI 기반 검사 솔루션

○ 로봇이 보다 정밀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센서와 카메라의 정확도를 높이는 기술

○ 로봇 손(그리퍼)의 움직임을 사람의 손처럼 세밀하게 제어하는 기술

○ 모터 진동 데이터를 분석해 설비 고장을 사전에 예측하는 예지보전 모델

 

전반적으로 하드웨어(HW)와 소프트웨어(SW), 그리고 AI 모델까지 일체형으로 구현하려는 흐름에서 가능성이 보인다. 이제 한국의 AI 산업에서는 알고리즘의 정교함을 겨루는 싸움에서 벗어나 실제 생산라인과 설비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 속에 기술을 통합해내는 능력이 경쟁력이 될 것이다.

 

AI가 사람의 노동을 완전히 대체하지 않아도 좋으니 AI가 사람과 함께 일하며 산업 현장을 더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만드는 것이 피지컬 AI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로봇이 자동화 기기 수준을 넘어 산업의 동반자로 자리 잡기 시작한 지금, 기술과 산업이 서로를 진화시키는 중요한 순환이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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