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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억 달러 몰린 'AI 월드 모델'…정작 뭘 만드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 고건 기자
  • 입력 2026.09.21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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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업계에서 '월드 모델(world model)'이라 불리는 새로운 기술에 막대한 돈이 몰리고 있다. 그런데 이 분야를 이끄는 기업들은 자신들이 정확히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좀처럼 밝히지 않는다.


월드 모델은 챗GPT 같은 기존 인공지능과 접근 방식이 다르다. 챗GPT로 대표되는 거대언어모델(LLM)은 방대한 글을 학습해 다음에 올 단어를 확률적으로 예측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반면 월드 모델은 물리적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학습한다. 

 

물건이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지, 로봇이 특정 동작을 하면 주변이 어떻게 바뀌는지 같은 인과관계를 내부에 담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한다. 이른바 '공간 지능'을 기계가 다루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기술은 로봇 제어, 자율주행, 사용자가 걸어 들어갈 수 있는 3차원 가상 공간 제작 등으로 확장될 수 있다.


대표 주자는 두 곳이다. 하나는 페이스북 모기업 메타에서 10여 년간 AI 연구를 이끌다 2025년 회사를 떠난 얀 르쿤이 세운 AMI 랩스다. 르쿤은 딥러닝 분야 업적으로 튜링상을 받은 인물로, 지금의 거대언어모델로는 진정한 지능에 도달할 수 없다고 오랫동안 주장해 왔다. 

 

AMI 랩스는 2026년 3월 10억3000만 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다. 아직 제품도 내놓지 않은 상태에서 유럽 역사상 최대 규모의 초기 투자를 받았고 회사 가치는 35억 달러로 평가됐다. 엔비디아, 삼성, 토요타 벤처스 등이 투자에 참여했다.


다른 하나는 스탠퍼드대 교수 페이페이 리가 이끄는 월드 랩스다. 리는 현대 딥러닝의 출발점이 된 대규모 이미지 데이터베이스 '이미지넷'을 만든 인물이다. 월드 랩스는 2026년 2월 추가 투자를 유치해 누적 12억3000만 달러가량을 모았고 여기에는 설계 소프트웨어 기업 오토데스크의 2억 달러가 포함됐다. 

 

이 회사의 대표 제품 '마블(Marble)'은 글이나 사진 한 장을 넣으면 걸어 다닐 수 있는 3차원 공간을 만들어 준다. 무료로도 쓸 수 있고 유료 요금제는 월 95달러까지 있다. 게임 배경이나 영화 특수효과 제작에 쓰일 수 있고 로봇 학습용으로도 활용된다.


문제는 이 돈이 정확히 어디로 향하는지 밖에서는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최근 열린 한 콘퍼런스에서 AMI 랩스 공동창업자이자 월드 모델 담당 임원인 마이클 라바트는 회사가 무엇을 개발 중이냐는 질문에 준비가 되면 이야기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이후 그는 아직 연구·개발 단계이기 때문에 제품 계획이나 출시 시점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다고만 덧붙였다. 창업한 지 1년도 안 된 만큼 이해할 만하지만 이런 함구는 업계 전반에 퍼져 있다.


비밀주의는 이들에게 데이터를 대는 협력사에까지 미친다. 월드 모델 학습용 데이터를 공급하는 피지클의 대표 알렉스 드 비강은 자사 데이터가 고객사에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정작 그것이 어디에 쓰이는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고객사가 무엇을 만드는지 알면 더 쓸모 있는 데이터를 만들 수 있을 텐데 아쉽다고 토로했다.


기업들이 입을 닫는 데는 이유가 있다. 월드 모델은 활용처가 워낙 다양하다. 자율주행차가 도로 상황을 파악하는 것과 같은 기술이 사람 형태의 로봇이 짐을 나르거나 짧은 영상을 걸어 다닐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는 데에도 쓰일 수 있다. 

 

AMI 랩스만 해도 제조, 바이오, 로봇, 그리고 의사를 돕는 소프트웨어까지 여러 분야에 발을 담갔다. 의료 쪽에서는 진료 대화를 자동으로 기록해 주는 프랑스 스타트업 나블라와 손잡았다.


어느 한 분야를 콕 집어 발표하는 순간 경쟁이 시작된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만약 AMI 랩스가 사람 형태 로봇이나 차세대 영상 제작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공개하면 다른 월드 모델 기업은 물론 오픈AI와 앤트로픽 같은 거대 기업까지 그 시장에 뛰어들 수 있다. 

 

투자가 쉽게 몰리는 지금은 한 분야에 서둘러 집중할 이유가 없으며 오히려 방향을 감출수록 유리하다. 나에게 자금이 흐르는 만큼 잠재적 경쟁자에게도 자금이 흐르기 때문에 경쟁이 시작되는 시점을 최대한 늦추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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