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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번 돈, 결국 다시 나눠야 한다"…실리콘밸리 큰손의 파격적 발언

  • 고건 기자
  • 입력 2026.07.18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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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열풍으로 실리콘밸리에 쌓인 막대한 부(富)를 두고, 그 부를 만들어낸 벤처투자자 본인이 "언젠가는 다시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발언의 주인공은 유럽 최대 벤처캐피털 인덱스벤처스를 공동 창업한 닐 라이머다. 

 

그는 최근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한 기술 축제 자리에서 "일종의 재분배가 일어날 것이라는 강한 예감이 든다"며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그 일은 벌어질 것이고 나는 자발적이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술 업계 지도자들이 그 과정에서 앞장설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발언이 주목받는 이유는 라이머가 AI 호황의 직접적인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인덱스벤처스는 설립 이후 외부 투자자로부터 약 150억 달러를 유치했고 지난해에는 디자인 협업 도구 회사 피그마의 상장과 구글의 보안기업 위즈 인수로만 약 90억 달러를 회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인덱스는 챗봇 '클로드'를 만드는 AI 기업 앤트로픽의 투자사이기도 하다. 자기 이익과 배치될 수 있는 말을 공개석상에서 꺼낸 셈이다.

 

그의 경고는 부자들의 자발적 기부가 눈에 띄게 줄어드는 시점과 맞물려 있다.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가 2010년 시작한 '기빙 플레지'는 억만장자들이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하는 운동이다. 

 

그러나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초기 5년간 113가문이 서명한 이후 72가문, 43가문으로 줄더니 2024년에는 단 4명만 참여했다. 세계 최고 부자인 일론 머스크는 "내 사업 자체가 자선"이라고 말한 바 있다.

 

기부 감소는 부자들만의 현상이 아니다. 2024년 미국 전체 기부액은 5925억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지만, 실제로 기부에 참여한 미국인 수는 5년 연속 줄었다. 2000년에는 전체 가구의 3분의 2가 기부했으나 지금은 절반 수준이다.

 

이런 흐름은 인덱스의 투자처인 앤트로픽 내부에서도 나타난다. 미국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가 재무설계사 알렉스 캐스웰에게 앤스로픽 직원 고객들이 재산 대부분을 기부하려 하느냐고 묻자 그는 대부분 기부를 계획에 넣지 않고 오히려 엔젤투자나 창업에 관심을 둔다고 답했다. 

 

앤트로픽은 직원이 보유 지분의 최대 25%를 기부하면 회사가 같은 금액을 함께 내주는 제도를 운영하지만 실제 활용하는 직원은 많지 않았다.

 

자발적 기부가 주춤한 사이 그 결과를 법으로 강제하려는 움직임이 등장했다. 캘리포니아주는 올해 11월 순자산 10억 달러가 넘는 억만장자에게 자산의 5%를 한 차례 물리는 '부유세' 도입 여부를 주민투표에 부친다.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 등 일부는 이미 세금 부담이 적은 플로리다로 거주지를 옮겼다. 

 

이 세금은 올해 말 기준으로 전 세계 자산을 합산해 순자산을 계산하기 때문이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비롯해 반대 목소리도 크다. 1990년 이후 여러 선진국이 부유층 이탈을 지켜본 뒤 비슷한 부유세를 폐지했다는 점이 근거로 제시된다.

 

또 다른 방안도 논의된다. 오픈AI는 미 연방정부에 지분 5%를 넘기는 구상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는 이를 두고 AI가 창출한 이익을 국민과 나누는 방법이라고 설명하지만, 워싱턴의 정치적 압박을 무마하려는 포석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오픈AI는 2027년 상장을 검토 중이다.

 

현재 흐르는 부의 규모는 전례를 찾기 어렵다. 머스크는 지난달 우주기업 스페이스X 상장으로 순자산 1조 달러를 넘긴 첫 인물이 됐다. 

 

포브스는 2026년 순위에서 새로 이름을 올린 AI 억만장자만 45명, 합산 자산 2조 9000억 달러로 집계했다. 앤트로픽과 오픈AI가 상장을 마치면 두 회사 직원들이 보유한 부만으로 샌프란시스코 광역권 전체 주택의 3분의 1가량을 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 정도 부의 집중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3분기 미국 상위 1% 가구가 전체 부의 31.7%를 쥐었는데, 연방준비제도가 1989년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최고치다. 다만 1916년 도금시대 정점에 상위 1%가 45%를 차지했던 것보다는 낮다. 

 

그러나 최상층으로 범위를 좁히면 그림이 달라진다. 경제학자 가브리엘 쥐크만의 계산으로는 최상위 극소수 가문의 재산이 미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10년 무렵 4%에서 지금 14%로 커졌다. 그 사이 이 최상위층을 이루는 가문은 4개에서 19개로 늘었다. 

 

라이머가 말한 두 갈래 길에는 선례가 있다. 1889년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는 부자가 재산을 살아 있는 동안 공익을 위해 나눠야 한다는 글 '부의 복음'을 발표했고 이는 현대 자선의 출발점이 됐다. 

 

그러나 자발적 환원만으로는 압력을 다 풀지 못했다. 1930년대 중반 휴이 롱 상원의원이 부유층에 무거운 세금을 물려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을 주자는 운동을 벌이자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최고 소득세율을 79%까지 끌어올리는 이른바 '부자 증세'를 밀어붙였다.

 

(썸네일 사진 출처: Indexventur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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