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소스 AI 모델이 몸값 싼 대안으로 시장을 파고들고 있지만 정작 앤트로픽 같은 최상위 AI 개발사의 매출은 흔들리지 않고 있다. 값싼 모델이 비싼 모델을 대체하는 대신 서로 다른 단계에서 공존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논의의 출발점은 기업용 AI 상담 서비스를 만드는 데카곤(Decagon)의 최고경영자 제시 장이 지난 7일 자신의 소셜미디어 X에 올린 글이다. 그는 "기업용 오픈소스 AI에 대해 모두가 틀렸다"는 제목으로, 성숙한 AI 서비스일수록 더 가볍고 저렴한 모델로 갈아타고 있으며 자신의 회사도 예외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값비싼 최신 모델에 쓰이는 전체 지출은 거의 줄지 않았다는 모순을 지적했다.
여기서 오픈소스 모델이란 내부 설계도와 가중치(모델이 학습한 결과값)를 공개해 누구나 내려받아 자체 서버에서 무료로 돌릴 수 있는 AI를 말한다. 반대로 프런티어 모델은 앤트로픽, 오픈AI처럼 개발사가 성능 최상단을 지키며 사용량만큼 요금을 받는 폐쇄형 최고급 모델을 가리킨다.
장의 설명은 둘이 경쟁 관계가 아니라 하나의 생애주기를 이루는 두 단계라는 것이다. 비싼 프런티어 모델이 먼저 새로운 활용처가 실제로 작동하는지 증명하면 그 활용처가 무르익은 뒤 값싼 오픈소스 모델로 넘어간다. 성숙한 용도가 가벼운 모델로 옮겨가는 동안 새로운 용도가 계속 생겨나기 때문에 프런티어 모델 지출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수치도 이를 뒷받침한다. 개발 도구 회사 버셀(Vercel)의 AI 게이트웨이 집계를 보면 지난 한 주 사이 중국 딥시크(DeepSeek)가 토큰 처리량 1위로 올라섰다.
토큰은 AI가 글을 처리하는 최소 단위로 사용량을 재는 기준이 된다. 딥시크는 이 회사 인프라를 지나는 토큰의 3분의 1가량을 처리했다. 인기 모델 GLM-5.2를 내놓은 중국 Z.ai도 같은 기간 4위로 뛰어올랐다.
다만 지출액으로 내려가 보면 그림이 달라진다. 버셀 플랫폼 전체 AI 지출의 절반 이상은 여전히 앤트로픽 몫이다. 최근 변화의 상당 부분이 앤트로픽의 가격 인상에서 비롯됐고 그 결과 점유율이 지난 한 달간 소폭 내렸을 뿐 큰 폭의 하락은 아니다.
또 다른 중개 플랫폼 오픈라우터(OpenRouter)도 비슷하다. 사용량으로는 딥시크의 저가 모델 V4 플래시가 주당 5조3000억 토큰을 처리해 선두다. 가장 많이 쓰인 프런티어 모델인 앤트로픽 오퍼스(Opus) 4.8은 2조 토큰을 조금 넘겼다.
그러나 토큰당 평균 단가를 보면 오퍼스 4.8이 100만 토큰에 1.37달러, V4 플래시가 6센트로, 오퍼스가 약 23배 비싸다. 처리량은 뒤져도 지출의 대부분은 오퍼스가 가져갔다는 뜻이다.
여기에 엔비디아가 내놓은 오픈소스 모델 네모트론(Nemotron)까지 가세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넓은 인맥과 모델 자체의 높은 적응력을 앞세워 선두권으로 치고 올라올 태세다.
이런 수치가 장의 생애주기 이론을 완전히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앤트로픽 같은 개발사가 오픈소스의 부상으로 큰 타격을 받고 있지는 않다는 점은 보여준다. AI로 처리할 수 있는 일감 자체가 빠르게 늘어난 덕에, 최상위 모델이 초기 단계 도입만 장악해도 자리를 지킬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장은 프런티어 개발사가 새 용도를 발굴하는 단계를 계속 차지하고 오픈소스가 실제 운영 단계를 점점 가져갈 것이라고 정리했다. 아무리 값싼 대안으로 옮겨가려 해도 일부 용도는 너무 어려워 대체가 불가능하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지난해 9월만 해도 최상위 개발사가 스타벅스에 원두를 납품하는 처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부가가치가 큰 응용 서비스는 다른 회사가 차지하고 개발사는 값싼 재료 공급자로 밀려난다는 우려였다.
실제로 특정 분야에 특화된 AI 서비스들이 가벼운 모델로 갈아탔고 남의 모델에 껍데기만 씌운 이른바 'GPT 래퍼' 업체들의 사정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토큰 단위로 보면 최상위 개발사는 가장 값나가는 자리인 비싼 토큰 단가를 지켜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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