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화웨이가 미국의 반도체 제재를 우회하기 위한 새로운 칩 설계 방식을 공개했다. 첨단 노광장비 없이도 세계 최고 수준에 근접한 성능을 내겠다는 구상이다.
화웨이 반도체 사업부 책임자인 허팅보 사장은 25일 상하이에서 열린 국제전기전자공학회(IEEE) 국제 회로·시스템 심포지엄(ISCAS) 기조연설에서 '타우(τ) 스케일링 법칙'과 '로직폴딩(LogicFolding)' 아키텍처를 처음 공식 발표했다. 회사 내부에서는 허 사장의 이름을 따 '허스 로(Her's Law)'로도 불린다.
지난 50여년간 반도체 산업은 인텔 창업자 고든 무어가 제시한 '무어의 법칙'을 따라왔다. 트랜지스터를 더 작게 만들어 같은 면적에 더 많이 집어넣는 방식으로 성능을 높여온 것이다. 그러나 물리적 한계에 부딪히면서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조차 무어의 법칙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인정한 상태다.
화웨이가 내놓은 타우 스케일링 법칙은 트랜지스터의 '크기'가 아니라 칩 내부에서 신호가 전달되는 '시간(τ)'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 회로를 평면이 아닌 위아래로 접어 쌓는 로직폴딩 기술로 신호가 이동하는 거리를 짧게 만들어 집적도와 속도를 동시에 끌어올린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 기술이 처음 적용되는 제품은 올가을 출시 예정인 차세대 기린(Kirin) 모바일 칩이다. 화웨이는 9월 공개가 유력한 메이트 90 시리즈 스마트폰에 이 칩을 탑재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 평면 구조와 비교해 트랜지스터 집적도는 평방밀리미터당 2억3800만개로 53.5% 늘었고 최대 동작 주파수는 12.7% 높아진 3.1㎓에 이른다. 성능 코어의 전력 효율도 40% 개선됐다. 이는 인텔의 18A 공정이나 대만 TSMC의 3나노급에 견줄 수 있는 수준이다.
화웨이는 더 나아가 2031년까지 1.4나노 공정에 해당하는 트랜지스터 집적도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업계 1위 TSMC는 2나노 양산에 들어갔고 2028년 1.4나노 양산을 예고한 상태다. 삼성전자의 1.4나노 일정은 2029년, 화웨이의 목표 시점은 그보다 2~3년 뒤다.
이 발표가 주목받는 이유는 화웨이가 네덜란드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없이도 이 같은 성능을 내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EUV 장비는 5나노 이하 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이지만 미국의 제재로 중국은 수입길이 막혀 있다. 화웨이는 평면 미세화 대신 입체적 회로 배치와 패키징 기술로 우회로를 찾은 셈이다.
허 사장은 화웨이가 지난 6년간 타우 법칙에 기반해 이미 381종의 칩을 설계해 양산해왔다고 밝혔다. 스마트폰뿐 아니라 인공지능(AI) 분야에도 적용해 어센드(Ascend) 시리즈 AI 가속기에도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
시장은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해 25일 상하이 증시에서 중국 최대 파운드리 SMIC 주가는 가격제한폭인 20%까지 치솟아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또다른 파운드리 화홍반도체도 20% 상한가를 쳤다. 중국 첨단 기술주 중심 지수인 STAR 50도 장중 6% 가까이 급등했다.
다만 회의적 시각도 적지 않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 닐 샤 부사장은 적층·접힘 구조가 밀도 개선 효과는 분명하지만 발열, 수율, 전력 소모, 소자 성능 등 진정한 1.4나노 공정이 해결해야 할 과제까지 풀어낸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패키징 복잡성으로 인해 양산 수율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화웨이가 독립적으로 검증 가능한 성능 데이터를 내놓지 않은 점도 한계로 꼽힌다.
DGA그룹의 폴 트리올로는 화웨이가 단순한 엔지니어링 전략을 일종의 '법칙'으로 격상시킨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짧은 배선, 적층된 논리 회로, 칩과 패키지·소프트웨어·클러스터의 통합 설계 같은 시스템 차원의 최적화 접근법은 의미가 있다고 봤다.
이번 발표는 엔비디아가 사실상 중국 시장에서 물러난 시점에 나왔다. 황 CEO는 지난 21일 CNBC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의 수출 통제로 인해 엔비디아가 중국 AI 칩 시장을 화웨이에 넘겨준 상태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한때 엔비디아 데이터센터 매출의 20%를 차지했던 중국 시장은 이제 사실상 닫혔다. 아시아그룹의 조지 첸 파트너는 H200 같은 첨단 칩을 중국에 판매할 수 있는 창이 점점 좁아지고 있으며 이는 미국 정부의 우려를 더 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썸네일 사진 출처: 화웨이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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