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업들이 지난 40여 년간 도입한 자동화 기술 상당수가 생산성 향상이 아니라 평균보다 임금을 더 받는 노동자를 골라내 비용을 줄이는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는 분석이 나왔다.
202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런 아세모글루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와 파스칼 레스트레포 예일대 부교수가 공동 집필한 논문 '자동화와 지대 소산: 임금, 불평등, 생산성에 대한 함의'에 담긴 결론이다.
이 논문은 경제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학술지로 꼽히는 분기경제학저널(QJE) 2026년 5월호에 게재됐고 MIT는 7일(현지시간) 연구 결과를 공식 발표했다.
연구의 핵심 개념은 '임금 프리미엄'이다. 같은 학력과 경력을 가진 노동자라도 어떤 일자리에서는 시장 평균보다 높은 임금을 받는다. 노조 협약, 자격 면허, 기업이 숙련 노동자를 잡아두기 위해 지급하는 일종의 웃돈 등이 그 원인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추가 임금을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지대'라 부른다.
연구진은 자동화 기술이 무작위로 도입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지대가 발생하는 일자리를 표적으로 삼는다는 점을 이론과 실증 양쪽에서 입증했다. 어떤 산업, 직군, 업무에서든 노동자의 임금이 높을수록 그 일자리는 자동화의 매력적인 대상이 된다는 것이 아세모글루 교수의 설명이다.
분석 대상은 1980년부터 2016년까지의 미국 노동시장이다. 연구진은 미 인구조사국 통계와 미국공동체조사(ACS) 자료를 바탕으로 학력 다섯 단계, 성별, 연령, 인종, 이민자 여부 등으로 잘게 나눈 500개 인구 집단의 임금과 고용 변화를 추적했다.
여기에 49개 산업의 산업용 로봇, 전용 소프트웨어, 전용 기계 도입 자료를 결합해 자동화가 각 집단에 미친 영향을 정밀하게 추정했다.
그 결과 1980년 이후 미국에서 발생한 집단 간 임금 격차 확대의 52%가 자동화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약 10%포인트는 기업이 임금 프리미엄을 받던 노동자를 기계로 대체하면서 발생한 몫이다.
자동화로 영향을 받은 집단 안에서도 임금 분포의 70~95번째 백분위에 있던 비교적 잘 벌던 노동자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대학을 나오지 않았지만 동종 노동자보다 높은 임금을 받던 이들이 자동화의 주된 희생양이 됐다는 의미다.
이런 방식의 자동화는 기업과 사회 전체로 보면 비효율적이다. 연구진의 추정에 따르면 같은 기간 자동화로 얻을 수 있었던 잠재 생산성 향상의 60~90%가 임금 깎기 위주 도입 때문에 사라졌다.
셀프 계산대처럼 점원을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매장 운영 효율 자체는 크게 끌어올리지 못하는 기술이 대표적이다. 아세모글루 교수는 미국이 새로운 특허와 신기술을 쏟아내고도 생산성 통계는 초라했던 배경에 이런 어긋난 자동화 도입이 자리 잡고 있다고 짚었다.
문제는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이 같은 말이 아니라는 데 있다. 콜센터 자동화 시스템처럼 도입 자체가 회사의 장기 생산성에는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인건비를 줄여 단기 이익을 늘릴 수 있다면 경영진은 충분히 채택할 유인을 갖는다.
이 경우 기업의 순이익은 늘지만 회사의 실제 생산력은 오히려 후퇴할 수 있다. 비용을 줄이면서도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일이 가능하다는 아세모글루 교수의 지적이 그대로 들어맞는 대목이다.
연구진은 자동화 자체가 나쁘다는 결론은 경계하고 있다. 어떤 자동화는 생산성을 높이고 그 결과 기업이 더 성장해 고용을 늘리는 선순환을 만든다. 다만 지금까지 미국 경제에서 좋은 자동화와 그렇지 않은 자동화가 뒤섞여 도입돼 왔고 그 비중을 가려내는 작업이 충분치 않았다는 것이다.
아세모글루 교수는 자동화의 종류와 범위를 더 신중하게 조정한다면 같은 기술로도 더 큰 생산성 향상을 끌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어디까지나 기업과 사회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의 문제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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