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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전쟁에 흔들리는 AI 붐, 반도체 직격한 '헬륨 대란' 때문?

  • 고건 기자
  • 입력 2026.04.13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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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AI 인프라 투자 열풍을 이끌어온 아시아 반도체 산업이 이란 전쟁 여파로 흔들리고 있다. 에너지 가격 급등과 핵심 소재 공급 차질이 겹치면서 한국·대만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의 AI 공급망이 예상보다 빠르게 압박을 받고 있다.


이번 위기에서 가장 주목받는 소재는 헬륨이다. 헬륨은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가스다. 웨이퍼(반도체 원판)를 식히는 냉각재로 사용되고 미세 회로를 새기는 식각(에칭) 공정에서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역할도 한다. 현재 기술로는 헬륨을 대체할 소재가 없다.

 

전 세계 헬륨의 약 3분의 1은 카타르에서 생산된다. 카타르 국영 에너지 기업 카타르에너지가 운영하는 라스라판 산업도시는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단지이기도 한데 헬륨은 이 LNG 생산 과정에서 부산물로 추출된다. 그런데 전쟁 초기 이란의 드론 공격이 이 시설을 타격하면서 헬륨 생산 라인이 멈췄다. 카타르에너지는 이후에도 헬륨 수출을 14% 추가 축소했다.

 

헬륨 컨설팅 업체 코른블루스 헬륨의 대표 필 코른블루스는 이미 최소 2~3개월의 생산 중단과 이후 4~6개월의 공급망 정상화 기간을 예상하고 있다. 헬륨은 특성상 보관도 까다롭다. 분자 크기가 극히 작아 어떤 용기든 미세한 틈만 있으면 새어 나가고 액화 상태로 보관하는 전용 컨테이너도 35~48일이면 소진된다. 

 

현재 전 세계에서 운용되는 헬륨 컨테이너 약 2000개 가운데 상당수가 카타르에 묶이거나 이동 중인 선박 위에 있어 공급 충격은 실제보다 더 심각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한국은 이 위기에 특히 취약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사용하는 헬륨의 약 65%가 카타르산이기 때문이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단기 재고는 충분하다는 입장이지만 각 기업이 수개월치 재고를 보유한 만큼 전쟁이 장기화되면 하반기부터 실질적인 공급 제약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ING는 원자재 재고 고갈이 수 분기 내에 현실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TSMC,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모두 현재로서는 생산에 큰 영향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소재는 헬륨뿐만이 아니다. 브롬(반도체 공정용 화학 재료)도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수송되는 주요 공급망 소재 중 하나다. 카타르 QAFCO는 세계 요소 생산량의 14%를 차지하는데, 요소는 반도체 공장 냉각 시스템에도 활용된다.

 

대만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대만은 에너지의 97%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LNG의 약 3분의 1이 카타르에서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들어온다. 대만의 전력 생산에서 LNG 발전 비중은 절반에 달한다. 전쟁이 터졌을 당시 대만의 LNG 재고는 11일치에 불과했다.

 

대만 최대 반도체 위탁 생산 기업인 TSMC는 세계 첨단 반도체의 약 90%를 생산한다. 엔비디아, 애플 등에 공급하는 고성능 칩이 모두 이 회사 손을 거친다. TSMC 혼자 대만 전체 전력 소비의 약 10%를 쓴다. 에너지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대만 전체 기술 생산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는 구조다.

 

대만 국영 에너지 공사 CPC는 미국의 셰니어 에너지와 25년 장기 계약을 맺고 첫 도입 물량을 6월부터 받기로 했다. 일본 주요 전력사와의 LNG 재판매 협상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런 대안을 동원해도 공급난을 바로 해소하기는 어렵다. 대만증시(타이엑스 지수)는 이미 이번 전쟁 이후 크게 하락했고, TSMC 주가도 한 달간 7% 이상 빠졌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에너지 부족이 6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 대만 산업 생산이 기준치 대비 0.7% 감소할 수 있다고 추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 한창인 3월 한국의 반도체 수출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3월 반도체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51.4% 급증한 328억 달러로 처음으로 월 300억 달러 선을 돌파했다. 총 수출액도 861억 달러로 역대 월간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AI 데이터센터용 서버 수요 급증으로 DDR·NAND 메모리 가격이 전년 대비 6~8배 뛴 결과다. 컴퓨터 수출은 189%, SSD(낸드플래시 기반 저장장치) 수출은 218% 급증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현재 반도체 사이클이 예상보다 강하다며 올해 한국의 AI 주도 성장 궤도에 큰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ING도 AI와 메모리 칩 수요가 당분간 강세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분기별 수출 증가율 추이(1월 +102.7%, 2월 +160.6%, 3월 +151.4%)가 보여주듯 지금의 호황은 가격과 수요가 한꺼번에 몰린 결과다. ING는 현재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 보유한 원자재 재고가 수 분기 내에 바닥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AI 인프라의 핵심인 데이터센터(서버를 대규모로 집적해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는 막대한 전기를 소비한다. 미국 내 데이터센터들은 이미 전국 전력 소비의 4.4%를 차지하고 있으며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향후 5년간 미국 전력 수요 증가분의 절반이 데이터센터에서 나올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가운데 중동 내 데이터센터들이 이란의 공격 대상이 됐다는 사실은 AI 기업들의 투자 방향을 바꾸고 있다. 부동산 기업 JLL의 아태지역 데이터센터 사업 총괄 샌딥 세티는 AI 기업들이 중동 투자에서 눈을 돌려 동남아시아와 인도를 주목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마이크로소프트는 3월 말부터 4월 초 사이 싱가포르에 55억 달러, 태국에 10억 달러 이상을 AI 클라우드 인프라에 투자하겠다고 연이어 발표했다. 이 투자는 데이터센터 구축은 물론 싱가포르 학생 20만 명에게 AI 도구를 무료 제공하고 태국 근로자 15만 명에게 AI 기술 교육을 제공하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다만 일본처럼 새 데이터센터를 전력망에 연결하는 데 최대 10년이 걸리는 국가에서는 에너지 공급 자체가 장기 과제로 남아 있다. 싱가포르 난양공과대학 컴퓨팅학부의 웨이 루 교수는 현재의 AI 붐이 에너지와 칩 공급이 무한히 확장 가능하다는 전제 위에 세워진 것이라며 전쟁이 이 전제 자체를 재검토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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