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육군이 방산 기술 스타트업 안두릴(Anduril)과 최대 200억달러 규모의 장기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 기간은 총 10년으로 구성되며 우선 5년간의 기본 계약이 시작된 뒤 필요에 따라 추가로 5년을 연장할 수 있는 구조다. 이번 계약에는 안두릴이 개발한 하드웨어 장비와 소프트웨어 시스템, 관련 인프라 구축과 유지 서비스가 모두 포함된다.
안두릴은 최근 미국 방산 산업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기술 기업 가운데 하나다. 회사는 드론, 무인 잠수정, 자동화 감시 시스템, AI 기반 전투 지휘 소프트웨어 등을 개발하며 군용 기술 분야에서 존재감을 키워왔다.
전통적인 방산 기업들이 오랜 기간 하드웨어 중심 무기 체계를 공급해온 것과 달리 안두릴은 소프트웨어와 자율 시스템을 중심으로 군사 기술을 재설계하는 전략을 추진해왔다.
회사를 공동 창업한 인물은 가상현실 헤드셋 기업 오큘러스를 만든 팔머 럭키다. 그는 2014년 오큘러스를 페이스북에 매각하며 유명해졌고 이후 안두릴을 창업해 방산 기술 시장에 뛰어들었다.
럭키는 과거 친트럼프 정치단체에 기부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논란을 겪었고 결국 페이스북에서 회사를 떠났다. 그는 이후 언론이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과장했다고 주장해왔다.
군 당국은 이번 계약을 단일 통합 계약 형태로 설명했다. 그동안 안두릴의 기술을 도입할 때는 120건이 넘는 개별 조달 절차를 거쳐야 했는데 이를 하나의 기업 계약으로 묶어 도입 속도를 높이겠다는 의미다. 전장 환경이 빠르게 바뀌는 상황에서 새로운 기술을 더 빠르게 도입하고 실전에 적용하기 위한 구조 변화로 해석된다.
미 국방부 최고정보책임자실 산하 기술 책임자는 현대 전장의 핵심 요소가 점점 소프트웨어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군이 기술적 우위를 유지하려면 소프트웨어 기반 능력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확보하고 실제 전력에 배치할 수 있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이번 계약 역시 그 같은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럭키와 안두릴은 현재 트럼프 행정부와도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럭키는 자율 전투기, 무인 드론, 무인 잠수정 같은 자율 무기 체계를 통해 미군의 전쟁 수행 방식을 바꾸겠다는 비전을 강조해왔다.
안두릴은 최근 몇 년 동안 매출 규모도 빠르게 성장했다. 회사의 연간 매출은 약 20억달러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군과 정보기관을 주요 고객으로 두고 있으며 감시 센서와 AI 기반 분석 소프트웨어를 결합한 군사 플랫폼을 판매하고 있다.
안두릴은 J.R.R.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마법 검 이름에서 따왔다. 같은 방산 기술 기업인 팔란티어 역시 같은 소설에 등장하는 마법 구슬 이름을 회사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투자 시장에서도 안두릴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회사는 새로운 투자 라운드를 논의 중이며 기업가치는 약 600억달러 수준으로 평가받을 가능성이 있다. 스타트업으로 출발한 기업이 전통 방산 기업과 경쟁하며 수십조원 규모의 가치 평가를 받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이번 계약 발표는 미국 정부가 AI 기업들과 관계를 재정립하는 가운데 나온 소식이기도 하다. 현재 국방부는 AI 기업 앤트로픽과 공급망 위험 지정 문제를 두고 갈등을 겪고 있으며 회사 측은 이에 대해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또 다른 AI 기업 오픈AI 역시 국방부와 협력 계약을 체결한 이후 일부 소비자 반발과 내부 인사 이탈을 경험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리콘밸리의 기술 기업들이 국방 프로젝트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면서 기술 산업과 군사 산업의 경계도 빠르게 흐려지고 있다.
무기 체계의 핵심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와 자율 시스템으로 이동하는 가운데 군은 더 빠른 기술 도입 구조를 만들고 민간 기술 기업과 협력을 확대하는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 AI와 소프트웨어가 전쟁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더욱 가속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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