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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의료 현장을 실제로 움직이기 시작한 AI

  • 고건 기자
  • 입력 2025.12.09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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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의료 현장에서 AI를 가장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나라는 어디일까. 미국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영국이 이 분야의 선구자이다.

 

현재 영국 의료 현장에서는 인공지능이 실험 단계에서 벗어나 실제 업무를 맡아 처리하는 수준까지 자리잡고 있다. 특히 환자가 처음 병원에 연락하는 순간부터 진료 준비, 의사 결정 지원, 사후 관리까지 AI가 참여하는 범위가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그동안 의료계는 민감한 개인정보와 안전 문제 때문에 자동화를 도입하는 데 매우 신중했지만 최근 NHS(영국 국립보건서비스)가 비용 압박과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I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변화 속도가 가파르게 높아지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전화 시스템에서 시작됐다. 영국에서는 대부분의 환자가 아침 시간대에 GP(일차의료기관)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잡는다. 통화가 한꺼번에 몰려 몇십 분씩 기다리기도 하고, 급한 환자도 일반 문의 전화 사이에 끼어 늦게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도입된 AI 기반 전화 응대 시스템은 이런 문제를 바로 해결했다. InTouchNow.ai라는 솔루션은 전화를 받자마자 음성 AI가 환자 음성을 듣고 내용을 파악해 예약 잡기, 처방 요청, 검사 결과 안내 같은 업무를 바로 처리한다. 

 

“예약 잡고 싶다” “약 다시 받을 수 있나”처럼 환자가 말하는 내용을 실시간으로 구분해 적절한 메뉴로 안내하고 필요한 경우 바로 병원 내부 예약 시스템에 연동해 일정을 잡아준다. 사람이 여러 전화를 동시에 처리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지만 AI는 수십 통의 전화를 동시에 소화할 수 있어 아침 시간대 대기 줄이 크게 줄었다.


이런 시스템에는 환자가 어떤 증상을 말하느냐에 따라 우선순위를 자동으로 판단해 급한 환자를 먼저 연결하는 기능도 포함돼 있다. 의료 용어를 정확히 모르는 환자도 “숨이 좀 가쁘다” “어지럽다”처럼 일상적인 말을 하면 AI가 이를 위험 신호로 인식해 빠르게 진료가 필요한 상황인지 판단한다. 

 

복잡한 기술처럼 들릴 수 있지만 실제로는 사람의 말을 받아적고 그 의미를 판단하는 생성형 언어모델의 언어 인식 기술과 의료기관 예약 시스템을 묶어놓은 형태다. 영국의 여러 GP 진료소에서 이미 이 시스템을 도입해 통화 누락 건수 감소, 스태프 업무량 감소, 환자 접근성 개선 효과가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NHS가 주목하는 또 다른 분야는 환자 분류(트리아지)다. Smart Triage라는 시스템은 환자가 온라인이나 전화로 초기에 증상을 말하면 그 내용을 토대로 어떤 단계의 진료가 필요한지 자동으로 분류해준다. 

 

예를 들어 “목이 아프고 열이 난다”고 하면 우선 환자의 말에 기반해 심각도를 판단하고 심각한 패턴이 포착되면 즉시 전문의나 응급센터로 연결한다. 2024년 한 GP 클리닉 평가에서는 이 시스템이 환자 대기 시간을 평균 73% 줄였다는 결과가 나왔다. 의료진이 일일이 문답하며 증상을 파악할 필요가 줄어든 덕분이다. 

 

이제는 여러 GP 진료소가 기존의 AskMyGP 같은 전통적 접수 시스템을 Smart Triage 기반으로 교체하며 환자 흐름을 자동화하려 하고 있다.


의사를 돕는 임상 참고용 AI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iatroX라는 플랫폼은 의사가 환자 상태를 보고 의심되는 질환을 검색하면 관련 연구 자료와 최신 임상 지침을 빠르게 요약해 보여준다. GP는 폭넓은 질환을 모두 다루기 때문에 드물게 나타나는 증상이나 복잡한 질환의 원인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 때 AI가 방대한 문헌을 읽고 의학 정보를 몇 초 만에 정리해주면서 임상의 판단 속도가 크게 빨라지고 있다. 2025년 조사에서 사용자 중 86%가 “유용하다”, 79%가 “신뢰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행정 업무에서도 AI의 역할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진료 기록 정리, 처방 검토, 만성질환 환자의 수치 변화 모니터링, 상담 음성을 자동으로 글로 옮기는 작업 등이 이미 여러 NHS 문서에서 실제 사용 사례로 소개되고 있다. 

 

특히 의료 현장은 개인정보 보호 기준이 매우 높은데 영국에서는 GDPR 규정을 엄격히 적용하고 NHS 내부 시스템과 연동할 때도 보안 검증을 의무화해 AI 도입이 무조건적인 자동화가 아니라 ‘안전한 자동화’의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영국 NHS는 예산 부족과 인력난을 수년째 겪고 있다. 그동안 행정 인력과 접수 인력에 쓰던 비용을 환자 진료에 투입하기 위해 AI 도입을 적극적으로 채택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환자 전화 폭주처럼 수십 년 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만성적인 문제들이 AI 기반 솔루션을 통해 실제로 개선되고 있는 점이 의료진의 반응을 바꾸고 있다. 몇몇 의료기관에서는 야간 시간대에도 AI가 전화를 받고 접수를 처리해 인력 초과근무 비용을 줄이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2025년 12월의 흐름을 종합하면 영국 의료 시스템은 AI를 보조 도구가 아니라 ‘두 번째 손’처럼 활용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환자 접수, 초기 분류, 의사 의사결정 지원, 행정 자동화까지 실제 진료를 둘러싼 거의 모든 영역에서 AI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여전히 개인정보 보호와 안전성 검증이라는 난관은 남아 있지만 변화의 속도는 이미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빨라졌다. 의료계는 이제 AI를 “언젠가 도입될 기술”이 아니라 “이미 곁에 있는 동료”로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이 흐름은 앞으로 더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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